◆편집자 주
시사포커스강릉은 창간기념으로 수묵화가이며 예술비평가, 사진작가로 최근‘돈오돈오, 문득 깨친 돼지와 까마귀’라는 책을 펴낸 박황재형 작가의 글을 도서출판 리좀 협약을 맺고 연재합니다.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치열한 예술혼의 세계를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체로금풍體露金風

한 스님이 운문 선사를 찾아와서 묻습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 선사가 대답합니다. 가을바람에 나무의 본체가 완연해지지. 승문운문僧問雲門, 수조엽락시여하樹凋葉落時如何, 운문운雲門云, 체로금풍體露金風. 금풍은 가을바람이고, 체로는 전체로현全體露現의 줄임말로 전체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잎을 떨구고 거칠고 모진 세월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울긋불긋 치장했던 옷을 벗고 온전한 알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체로금풍은 꾸밈없고 온전한 본 모습의 표상으로 분별망상을 없애면 본래면목이 드러남을 이르는 말입니다.

인간人間

사람은 한자로 인人이지만 우리는 흔히 인간人間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증명이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은 단독적이 아닌 관계적 동물이라는 의미겠죠. 그런데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인간답다는 말이 큰 칭찬인 세월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사람은 당연히 개나 소 같은 짐승이 아닌 이미 인간임에도 그러합니다.
하긴 지나간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저지른 인간답지 못한 짓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런 말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 쓰기가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