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 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봄을 재촉하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날. 장석주 시인이 쓴 ‘다시 첫사랑 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시를 음미하며 아쉬웠던 첫사랑의 아련함에 젖어 봅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게 간직했던 첫사랑.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 시리게 다가와 괜스레 얼굴 붉히며 설레던 유년시절의 첫사랑. 그 상큼하고 순수했던 소녀는 지금쯤 어디선가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흐르는 세월을 그렇게 살아와 이제는 저처럼 노년의 삶을 이겨내고 있겠지요.
책갈피 속에 곱게 접어 두었던 장석주 시인의 시를 펼쳐보며,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번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창문 너머 멀리 대관령에는 안개인 듯, 구름인 듯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아흔아홉 구비 중 어느 한 구비에 걸려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습니다. 마치 내 유년의 첫사랑도 그렇게 그리움이라는 추억 속 한 구비에 걸려 떠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그윽한 안갯속 대관령의 풍광이 오늘따라 외로워 보임은, 초로의 길에 접어든 나이에도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한 사나이의 마음인 듯합니다.

봄을 재촉하듯 피어나는 그리움이라는 내 마음속 첫사랑의 애틋함을, 이제는 접어두었던 장석주 시인의 시와 함께 내리는 빗속으로 떠나보내려 합니다. 그리하여 가슴 한편에 자리하며 하나씩 꺼내보던 추억 속 나의 첫사랑은 아름다웠노라고 노래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