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팔경을 현대화 혹은 현재화하자는 제안을 한다. 근래 팔경(八景)이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는 다분히 저 중국의 소상팔경에서 비롯되어 예컨대 관동팔경이 가장 널리 회자되었거니와, 대한민국이 지방자치제로 전환하자 이젠 마을마다 경관 좋은 곳이라 하여 팔경을 선정해 경쟁적으로 홍보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팔경의 전국화 혹은 일반화를 반겨야 할 일이지만, 그것이 제 역할을 하는지는 적지 아니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나친 양산으로 변별력이 없어 다만 이름뿐이라 그러하다. 활용하지 않는 팔경을 그대로 두어도 좋은지 묻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그를 넘을 한 예로 경포팔경의 현대적 진화를 제시해 본다. 경포팔경은 조선 초의 홍장고사와 옛날 남항진에 있었던 한송사가 얘기됐으니, 조선 중기쯤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포팔경은 이러하다. 제1경 녹두일출(綠荳日出), 뒤로 2경 3경… 이어져 죽도명월(竹島明月), 강문어화(江門漁火), 초당취연(草堂炊煙), 홍장야우(紅粧夜雨), 증봉낙조(甑峰落照), 환선취적(喚仙吹笛), 한송모종(寒松暮鐘)이 그것이다.
이것의 현대화란 무슨 내용인가? 자, 경포대로 가보자. 아침(녹두일출)이면 좋을 듯하지만, 우선 해가 질 무렵(증봉낙조)이나 어스름 저녁(죽도명월)이면 더 그럴 듯하다. 오랫동안 경포대의 명성을 들은 관광객이 경포대에 올랐다. 그윽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동해를 바라보고 고개를 돌려 경포대 뒤의 증봉(시루봉)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증봉낙조)에 감탄하고 있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종소리냐?! 디잉∼, 저 동쪽에서 지금은 사라져 없는 한송사의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한송모종)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 춘갑봉(근래 지어진 산 이름)의 피리 소리(환선취적)가 이어진다. 아, 때마침 강문에서 고기잡이배들이 넓은 바다로 떠나면서 밝히는 어화(강문어화)가 불을 밝히고, 호수 건너 초당 마을 초가들의 굴뚝에서 저녁밥을 짓는 하얀 연기(초당취연)가 솟아오르는도다! 이런 참에 경포 호수 위로 배 한 척이 아름다운 실루엣의 여인을 태우고 지나가는데(홍장고사) 마치 신선세계인 듯하다. 이것 모두 한 순간에 이어지니, 역외에서 경포대를 보러 온 관광객이 감동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꺼떡꺼떡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던 영도다리가 되살아난 이후 부산광역시 영도에 수많은 관광객이 다리가 올라가는 시각에 모여들어 왕년의 그 장면이 재연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들은 도교(渡橋) 행사에 참석해 직접 다리를 건너보는 체험을 하며 감동을 몸으로 느껴 갖는다. 캐나다의 벤쿠버에 가보아라. 벤쿠버 거리에는 신기하게 연기가 나는 시계탑(The steam clock)이 있어 일정한 시간에 그걸 실현하므로 관광객들이 그 시간에 연기 나는 시계를 보러 모여든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경포대에도 아침저녁으로 경포팔경이 오감으로 실현되는 장면을 연출해 봄이 어떠한가 하는 얘기다. 때에 이르러 시청각적 장면이 전개된다면 이것이 소문이 되어 퍼져 나가 경포대가 무너질 두려움에 젖을 정도로 구름같이 많은 관광객이 8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바로 그 시각에 맞춰 경포대에 오를 것이 아닌가. 한번 상상해 보시라.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 속에서 다만 박제화됐을 따름인 경포팔경을 되살려내는 일에 모두가 떨쳐나설 만하지 아니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