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촌,
바닷가 한 모퉁이의 허름한 노천카페에서 들려오는, ‘Olivia Newton John’의 ‘Blue Eyes Crying In the rain’이 빈 가슴을 채워줄, 마음의 양식을 찾아 길을 떠난, 이방인의 발걸음을 붙잡는 그런 바람 불어 좋은 주말 오후의 풍경입니다.

복잡한 일상의 상념에서 벗어나고자 홀로 떠난 여행길에, 외로운 여행객의 발걸음을 옮기게 했던 이 작은 카페에서 저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 아니면 필연을 앞장세운 우연이었는지 모를, 추억 속 한 소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오래된 일들을 이곳 여주인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 속 추억들을 하나씩, 둘씩 끄집어내어 제게 들려줍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겁 없이 살아가던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방황하던 그때, 길을 가다 우연찮게 눈에 들어온 어느 시골 허름한 학교 게시판에 "물질적인 빈곤을 자랑할 줄 아는 깨우친 사고와 주경야독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명을 지닌 선생님을 모십니다."

한마디로 적은 금액의 보수에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할 선생님을 원한다는 말인데, 그것을 비유하여 쓴 글귀가 마음에 들어 시작했던 그곳의 생활. 그 추억을 지금, 마치 스쳐가는 파노라마의 영상처럼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는 듯합니다.

향이 좋은 커피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쉬고자 하는 이방인의 귀에, "혹시 ㅇㅇ 선생님 아니신가요?"라며 말을 건네 오는 이곳 여주인은 알고 보니 단발머리에 흰색의 교복이 예뻤던, 제 추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때 그 학생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열여덟 살, 그 풋풋하고 청순했던 소녀가 사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분 바른 여인이 되어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습니다. 여고시절 비릿하고 순수했던 느낌은 어디 가고 알 수 없는 내음을 물씬 풍긴 채 말입니다.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수많은 喜怒哀樂 중에서도 특히 이 아이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힘들고 어렵지만 밝은 미래를 위해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빛났던 맑은 눈동자들이 있어 적은 보수에도 감사하며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때의 때 묻지 않아 순수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이기적인 게,
그 추억의 한순간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그 아이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혹시나 그 아이들에게 말과 행위로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해서, 그때의 제가 어땠는지를 물었더니 긴 장발에 깊은 우수를 가득 담은 눈으로 "올바른 삶이란 정의롭게 살아가는 거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올바르게 살아가 이 땅에 정의가 꽃피우게 하는 게 여러분들과 내가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표" 라며 유독 정의만을 강조하고 가끔 보강 시간에는 통기타로 노래도 불러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짱이었다며 좋은 기억만 말하는 이 집 여주인의 배려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때 제가 기타 치며 불러 주었다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지금 흐르는 ‘Olivia Newton John’의 ‘Blue Eyes Crying In the rain’이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이 울적하고 외로울 때, 누군가가 그립고 보고플 때, 또 기쁘고 행복할 때마다 부르고 듣는 제일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내뱉은 한마디 말이, 어쩌다 불러 주었던 노래 한 곡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누구에겐 상처가 될 수 있고, 희망이 될 수 있기에 말 한마디 작은 행위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 이 집 여주인이 오히려 제겐 인생의 스승인 듯합니다.

붉은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서해의 해변을 걸으며 또다시 길을 재촉하는 이방인의 입에서도 어느새 이렇게 노래를 읊조리고 있습니다.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빗속에서 울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