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지역 벚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릉 경포대 벚꽃이 화면을 차지할 때는 고향의 꽃 잔치를 보는 듯이 반가웠다. 그와 함께 내 안에 스며있는 최고의 자연 감성이 살아났다.

나는 1983년 강릉을 떠나 서울로 왔다. 당시는 산이나 계곡에서 취사가 허용되던 때였다. (1991년 3월, 전국의 모든 산에서 취사, 야영 금지) 어느 날 친구가 우이동 계곡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밥을 해 먹기로 하고 버너와 코펠을 꺼냈다. 친구가 계곡물에다 쌀을 씻었다. 강릉 계곡물처럼 맑지 않았다.
 “이 물로 밥을 할 건 아니지?”
 “맑은 물이라서 괜찮아.”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놀라웠다. 청정지역 물을 보고 살던 나로서는 그리 맑아 보이지 않은 계곡물에 밥을 하는 게 이상했다.

얼마 후, 벚꽃 구경을 가자는 친구들을 따라간 곳은 벚나무 가로수 길이 펼쳐진 곳이었다. 친구들은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황홀해했다. 그러다 반응이 미지근한 나를 보고 친구가 물었다.
 “예쁘지? 저 흩날리는 꽃비 좀 봐.”
웃음이 나왔다. 최고의 자연을 품고 있는 자의 여유로운 우쭐함이랄까.

내가 다녔던 금광초등학교는 운동장 둘레로 아름드리 벚나무가 있다. 벚꽃이 피어 하늘을 가리기 시작하면, 아침 조회 때마다 교장 선생님은 ‘벚나무에 올라가지 마라, 버찌를 따지 마라.’를 단골로 훈화했다. 초등학교 때 최고의 벚꽃을 보고 자란 것이다.

바다는 또 어떤가!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 바다로 갔을 때, 강릉 동해바다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격정적인 파도는 볼 수 없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나름의 멋이 있음에도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렇듯 강릉의 산, 들, 바다는 내게 최고의 자연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강릉에 KTX가 달리고 가까워진 거리만큼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그들이 자연에 눈 호강하고 갈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청정한 기운은 분명 도시 생활에 윤활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안 될 일이다.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킬 때만이 감흥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맑은 하늘에, 청량한 공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푸릇한 나무들, 지천에 핀 꽃들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자연 앞에 설 때마다 ‘고마워, 고마워!’로 교감한다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함영연(동화작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