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드는 작가 
                                    

어딘가 떠나고 싶어 마음에 단풍 드는 날, 강릉에 있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 편하게 왔다 가.
- 좋아.
나는 기꺼이 친구의 청을 접수했다. 그런데 다음 말,
-그날 강릉별빛동화동아리 모임 날인데 강사로….
그때부터 마음이 자유하지 못했다.

동화동아리 구성원을 보니 이미 동시, 시, 수필 등으로 일가를 이룬 작가들이었으니 가서 무슨 말을 하랴, 싶었다. 그렇지만 고향에서 친구가 부르는데 이유를 대면서 거절할 일이 아니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 비우는 연습을 했다. 즐겁게 가서 만나고 오는 거야. 다독였다. 강릉에서 만났던 여러 인연들이 생각났다. 그중에 초등학교 문예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더니 신뢰받는 법조인이 되었다는 친구, 박사라는 별명을 갖고 글을 열심히 쓰던 친구, 엉뚱한 표현을 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친구도 있었지.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에 글을 잘 쓰는 능력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글쓰기는 창의적인 생각, 정확한 분석, 날카로운 비판, 논리적인 표현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예반 친구들이 다들 자기 몫을 하는 것도 글의 힘이 바탕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을 소환하며 가다 보니 어느덧 강릉에 도착했다.

도서관 강의실에서 작가들을 만났다. 내 책 『가자, 고구려로!』 『개성공단 아름다운 약속』을 준비해서 자리를 하고 있었다. 창작에 정도가 있겠는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것 외엔. 내 경우를 되짚어 보았다. IMF 때 가정에 도움이 되려는 절실함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절실하니 포기할 수도 없었다. 창작하는 걸 즐겁게 하되,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아! 무슨 말을 했는지 두서없이 마치고 말았다.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얼굴 보러 왔다며 동화책을 가지고 온 님(무지개 팽이/최선미), 따끈따끈한 시집(어느 봄날/이종완)을 갖고 오신 님, 바쁜 중에도 사과를 담아온 님, 내 졸작인 손바닥 동화를 감칠맛 나게 읽어 준 님, 바쁜 중에도 짬을 내서 오신 님…. 이처럼 정겨운 님들을 만나다니! 고향의 가을이 내 마음을 단풍 들게 하고 있었다. 나는 황홀한 가을 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함영연(동화작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