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이 오기엔 이른 아침. 여민 옷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어 옵니다. 십여 년 전 이른 길을 떠난 친구 부인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통, 모든 걸 정리하고 강릉에 와 정착하고 싶다고,

남편이 제일 믿고 좋아하던 친구인 제게 가족이 살 수 있는 집과 땅을 알아봐 달라는 전화 한통이 제 마음에서 요란하게 요동 쳐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정말 제가 그 친구에게 그렇게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친구였는지 말입니다.

친구(親舊)를 한자로 표기 하면 親(친할 친) 舊(옛 구). 친할 친 자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木(나무 목) 立(설 립) 見(볼 견), 집을 떠나 먼 길을 다녀오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동네어귀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올라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애달픈 어미의 마음이 함축된 글자가 친할 친 자이며, 그런 어미의 마음을 갖고 있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이가 바로 친구입니다.

그런 어릴 적 동무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  앞서거니 뒤서거니 먼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운 친구들에게 저는 어떤 친구였는지 오래전 읽었던 어느 책에 수록된 친구의 종류를 기억을 되살려 다시 새겨 보려 합니다.

네 종류의 친구(親舊)
1. 화우(花友) 꽃과 같은 친구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는 바로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2. 칭우(秤友) 저울과 같은 친구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웁니다. 그와 같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3. 산우(山友) 산과 같은 친구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겨줍니다. 생각만 해도 늘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4. 지우(地友) 땅과 같은 친구
땅은 뭇 생명의 싹을 띄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모든 걸 베풀어 줍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나는 오늘 어떤 친구(親舊)였는지 친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어도 후회없는 그런 사람이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