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분명 하늘은 맑은데, 하늘에선 슬픈 여인네의 울음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을 해 가족들의 먹거리를 장만해야 할, 한 집안의 가장들이 야속한 듯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수주받은 일을 하려고 인력시장에서 일일 근로자 세분을 모시고 현장으로 가려는데 비가 내립니다.
지나가는 비려니 생각하고 그칠 때까지 잠시 커피를 마시며 그분들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몸져 자리에 누운 늙은 노모를 위해 약을 사려했고, 한 사람은 예쁜 막내딸의 학원비를 위해, 또 다른 이는 다섯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나왔다고 합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는데 이분들 사정이 마치 제 일인 듯 마음이 아려와, 그래도 하늘이 맑아오니 일을 하자며 현장에 나와 비가 그친 틈을 타 공구들을 챙기고, 일을 하려는데 무심한 하늘에서는 또 여우비가 내립니다.

추운 날씨에 비를 맞으면 안 되겠기에, 급히 비막이를 설치하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컵라면을 하나씩 건네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은 분명 안 되겠지만, 일을 하러 나오신 분들의 사정에 마음이 아파 간간이 비가 멈출 때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이른 점심을 먹이고 수고비로 적은 액수지만 오늘 하루 일당의 반씩을 드리며 어깨를 다독거리고 힘내시라는 말과 함께 그분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일을 다 못하고 돌아가는 그분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내 그분들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이 없어 노는 날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저도 건축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왠지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내리는 비로 인해 맡은 일을 하지 못 함에 슬프고, 일일 근로자들의 아픈 사정에 도움을 주지 못해 슬프고,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면서도 하루 일당을 다 주지 못 함에 슬프고, 이렇게 살수 밖에 없는, 이 정도의 그릇밖에 안 되는 보잘것없는 제 자신에 슬픕니다.

오늘은 그냥 슬픈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희망이라는 태양이 솟아오르리라 믿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렵니다.